Tuesday, May 28, 2013

Ethel Van Wagoner

Ethel Van Wagoner on her wedding day
Photo courtesy of the Underwood family collection

Ethel Van Wagoner was a teacher and a missionary who was eager to help Korea by sharing the word of God. Ethel was born in Kingston, Michigan on April 11, 1888. After graduating from New York University, she came to Korea to become the first full-time teacher in Seoul Foreign School.  In 1916 her term expired and she returned to America where she met and married Horace H. Underwood.  The couple lived in Korea for many years and had five children who lived with them in what is now the Underwood Memorial Hall. She learned Korean and was often a speaker at Korean churches, spreading the word of God. Also she found a club, the Faculty Wives Club, to support the wives of faculty at Yonsei.

On March 17, 1949 while she was hosting the Faculty Wives Club, a group of young men tried to break into the house. Ethel went to the front door to try to stop at least one of the men when one of them broke in from the back door and shot her. More than 5,000 people came to her funeral, not because she was an Underwood, but because of her tireless efforts to help the Korean people.

에델 와고너
에델 와고너는 교사였으며 열정적인 선교사였습니다. 한국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면서 한국을 돕고자 했습니다. 에델은 1888 4 11 미시간 킹스톤 에서 태어났습니다. 뉴욕대학교를 졸업한 에델은 한국으로 서울 외국인 학교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1916 임기가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갔을 호레이스 H 언더우드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으며 그들 사이에 5명의 자녀를 두고 지금 기념관 건물로 쓰고 있는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교사 부인 클럽을 만들어 연세대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직원의 부인들을 도왔습니다.

1949 3 17 교사부인들이 모임을 하고 있을 명의 괴한이 집에 침입을 했었습니다. 에델은 현관에서 괴한을 저지하고 있을 , 뒷문으로 침입한 괴한이 그녀의 등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5천명이 넘는 문상객이 그녀의 한국인들을 위해 도왔던 노력과 마음을 감사히 생각하며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Ethel Van Wagoner." Yonsei Memorial Hall, 2003. http://underwood.yonsei.ac.kr/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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